달러 패권 흔들리나? 달리오가 본 미국의 재정 리스크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재정과 부채에 대한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미국의 재정적자는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으며, 국채 판매 리스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그는 미국의 연방정부 지출 증가와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국채 매입 수요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는 미국 정부가 국채를 팔아도 사줄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팬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2024년 기준 연방정부의 누적 부채는 34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국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향후 금리 수준, 환율, 글로벌 자금 유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특히 미 재무부가 막대한 국채 발행을 통해 지출을 감당하면서, 금리 인상기에도 채권 수요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달리오는 “미국의 달러 패권과 채권 신뢰도가 서서히 흔들릴 수 있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보다 금, 유로, 엔화, 심지어 일부 암호화폐 자산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채권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경제와 글로벌 금융 안정성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이 글에서는 미국 재정적자 확대의 구조적 원인과 그로 인한 국채 판매 리스크, 레이 달리오가 제기한 경고의 의미, 그리고 이에 따른 국제금융 환경과 투자 전략의 재정비 필요성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재정적자의 구조와 위기의 징후
미국의 재정적자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되어 왔지만, 최근 그 규모와 속도가 예외적인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데에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증가, 국방비 확충,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이 주요 요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지속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단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간 재정적자 규모는 2023년 기준으로만 2조 달러에 육박했다. 이처럼 정부의 지출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세수 확대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환경이 맞물리면서 기업과 개인의 실질 소득이 위축되어 법인세, 소득세 수입 증가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연방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부채 총액의 가속적 확대를 초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 구조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제도(SSA),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의무지출 항목은 매년 자연 증가하고 있고, 이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합의는 극히 어렵다. 또한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국방예산 삭감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적자 축소는 향후 수십 년간도 어려운 과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국으로서 국채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최근 금리 인상과 함께 이자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연방정부의 연간 이자 비용만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미국의 재정 구조는 점점 더 ‘지출 불균형’과 ‘국채 의존’이라는 양날의 검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국가 신용도 하락, 국채 금리 상승,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글로벌 금융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달리오의 경고: 국채 신뢰도와 채권 수요의 이탈
레이 달리오는 2024년 하반기 세계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미국의 국채 시장이 구조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은 이제 단지 돈을 찍어내는 수준을 넘어서, 그 돈을 사줄 수요처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며 국채의 투자 매력도 하락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분석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신용도와 달러 시스템의 내구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국채는 전통적으로 ‘무위험 자산’으로 분류되어 왔으며,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앙은행, 연기금 등이 대규모로 보유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부채 수준이 GDP 대비 120%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국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국채 보유국들이 국채 매입 속도를 늦추거나 일부 매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미국 재정 운영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한다. 달리오는 또한 “과거에는 국채 금리가 오르면 자연히 수요가 따라붙었지만, 지금은 금리를 올려도 채권을 사고자 하는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금리 수준보다 국가신용도와 화폐신뢰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신뢰 기반 금융 시스템’의 균열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재정협상 실패, 반복되는 부채한도 교착 등도 이러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실제로 2023~2024년 동안 미국 국채 입찰에서 응찰률이 감소하고, 발행 규모 대비 매입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측됐다. 이는 미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금리를 더 높여야만 소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장단기 금리 역전, 기업 자금조달 비용 증가, 증시 변동성 확대 등의 연쇄 작용을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단지 채무를 갚지 못할 국가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 채무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국채는 더 이상 ‘무조건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 그 신뢰를 증명해야 하는 자산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국제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의 대응 전략
미국 재정과 채권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국제 금융시장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은 외환시장이다.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 하락은 달러 가치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며, 신흥국 통화와 자본 유출입 흐름에도 파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달러 강세가 약화되면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재상승 가능성도 커지며, 이는 각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 영향권은 금리 시장이다. 국채 수요 약화는 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는 글로벌 채권 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럽,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의 채권시장에도 상승 압력을 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주식시장에서는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이 하락하는 구조로 연결된다. 세 번째는 안전자산과 대체자산의 선호 증가다. 최근 몇 년간 금, 은, 암호화폐, 심지어 일부 커머더티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 국채에 대한 전통적인 신뢰가 흔들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금은 ‘화폐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때 대체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받기 때문에, 달리오가 “장기적으로 금은 채권보다 더 우수한 가치 저장 수단”이라고 강조한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포트폴리오 재편을 요구한다. 예전처럼 미 국채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자산운용 전략은 제한적인 수익률과 신뢰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과 글로벌 분산 투자가 더 높은 비중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의 정치·재정 리스크에 대비한 변동성 대응 전략(VIX ETF, 변동성 펀드 등)도 재조명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미국 외 국가들의 외환보유고 구성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신흥국 중앙은행은 달러 중심 자산에서 금, SDR(특별인출권), 위안화 등으로 외환자산을 다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통화 질서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달러 중심 체계가 단기간에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그 신뢰의 기초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