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리스크에 맞선 미국·EU의 전략 변화
2025년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중국 중심 경제 구조의 재편'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꾸준히 이어온 중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을 더욱 정교화하며, 기술·반도체·희토류 분야에서 대중 수출 규제를 강화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안보'라는 이중 목적 하에 중국과의 전략적 거리 두기를 지속해왔고, 그 기조는 2025년에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연합(EU)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U는 그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수출과 공급망 효율을 극대화해왔지만, 팬데믹 이후 드러난 공급망 취약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 리스크 증폭, 그리고 중국 내수시장 위축 등 여러 변수가 겹치며 ‘중국 의존 축소’라는 전략적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현재 중국을 '협력 대상'인 동시에 '경제 리스크'로도 인식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 전반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재편 흐름은 단순히 무역 흐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유럽 내 산업 전략, 외교 정책, 기술 투자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어떻게 중국 중심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려는지, 그 배경과 전략, 그리고 EU의 구체적인 대응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유럽에 전이되다
미국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과의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해왔다. 반도체 수출 규제, AI칩 제재, 화웨이·ZTE 등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CHIPS법 등 국내 제조기반 복원 및 전략기술 보호를 위한 법적 기반까지 마련하면서 미국은 사실상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 이 흐름은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 이전과 공급계약 변경 등 산업 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다.
EU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3년 이후 EU는 미국의 대중 경제 전략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경제안보 전략(Economic Security Strategy)'을 내놓았고, 이는 2024년 본격적으로 EU 차원의 입법과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해당 전략은 핵심 광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공급망 다변화 및 리쇼어링’을 목표로 한다. EU는 특히 중국의 희토류 및 태양광 소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과의 자원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 및 일본과의 기술동맹도 확대 중이다.
이 같은 전략 변화는 유럽 기업들의 공급망 지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독일의 폭스바겐(VW), 프랑스의 르노(Renault),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 등은 최근 중국 이외 지역에 신규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거나 투자처를 변경하고 있으며, 스페인·폴란드 등 EU 내부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고려를 넘어, 팬데믹과 지정학 리스크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공급망 안정성’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미국의 공급망 재편 흐름은 단지 자국 중심의 보호주의 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질서의 재편 과정이다. 그리고 유럽은 이 흐름 속에서 ‘자국 산업 보호’라는 현실적 선택을 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글로벌 무역 구조를 보다 다극화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EU의 탈중국 전략, 현실성과 한계 공존
유럽연합(EU)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태양광, 풍력터빈 등 친환경 산업의 핵심 소재와 부품 대부분이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럽의 산업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디리스크(de-risking)”라는 기조 하에 ‘탈중국’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제약도 함께 노출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 대체 공급망’의 현실성이다. 중국은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니라, 전 세계 광물 가공과 부품 조립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를 단기간에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유럽 내 기업들 역시 가격 경쟁력, 납기 안정성 등의 이유로 여전히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중국산 부품을 단기간에 교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또한 EU 내부에서도 국가별 입장차가 뚜렷하다. 독일과 프랑스는 비교적 적극적인 디리스크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은 중국과의 협력 유지를 선호한다. 이는 정책 일관성을 약화시키며, 공급망 공동 대응의 실행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유럽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중국 제품의 대체는 소비재 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이 크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럽 핵심기술법(European Critical Raw Materials Act)’과 ‘유럽 공급망 회복력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민간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제3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효과를 발휘하기보다는, 최소 중기적(3~5년) 접근이 필요한 과제다.
따라서 EU의 탈중국 전략은 단기적으로 ‘완전한 분리’보다는 ‘위험 분산’에 방점이 찍혀 있다. EU는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분야에서는 선택적 거리두기를 통해 경제안보를 강화하려는 복합적 접근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 구조 재편과 유럽의 전략적 자립 모색
미국과 EU의 대중 경제 재편은 단순한 무역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곧 산업 구조 전반의 재편을 의미한다. 특히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이라는 개념 하에 자체 기술 개발과 산업 역량 확보를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다. EU는 ‘EU Chips Act’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TSMC,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국 내 생산기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공급 다변화를 넘어서, 자체 기술력 확보와 기술 주권 강화라는 차원의 접근이다.
배터리 산업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배터리 공급망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스볼트(Northvolt), ACC, 베르켈리움 등의 배터리 제조사를 중심으로 유럽 내 공급망을 확대 중이다. 여기에 EU는 ‘유럽 배터리 연합’을 통해 공공·민간 협력을 기반으로 기술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친환경 인증 기준도 강화해 외부 수입산에 비해 자국산 배터리를 우선 소비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소, 재생에너지, 인공지능, 디지털 전환 기술 등에서도 유럽은 전략적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자국만의 산업 생태계를 확보해 ‘미중 사이의 중립적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결국 유럽은 중국 경제 구조와의 단절이 아닌, ‘의존도 조절과 자율성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혼합 전략’을 통해 복잡한 지정학 환경 속에서 안정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2025년 이후에도 유럽 경제전략의 핵심 축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