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시한 임박… 통상 긴장 고조
2025년 중반, 한국과 미국 간의 관세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22년 미국이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이후, 양국은 무역 규제 및 산업 보조금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왔으며, 오는 8월까지 타결하지 못할 경우 양국 간 통상 마찰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측은 자국 산업 보호와 공급망 안정화를 명분으로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 유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은 자국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외 조항 확대와 협정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협상의 주요 쟁점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장비, 철강·알루미늄 등 전략 품목의 관세율과 수출입 절차다. 특히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 세제 혜택에서 배제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타격이 크고, 미국 내 현지 생산 유인책이 강해지면서 역내 투자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방적 규제라고 지적하며, 유예 조치 및 이행 기간 확보를 요구하는 중이다.
이와 함께 미 의회의 정치적 계산과 미국 노동계의 반발도 이번 협상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수십조 원을 투자해 미국에 공장을 설립했지만, 추가적인 혜택 없이 의무만 가중될 경우 공급망 전략에서 미국을 제외하는 결정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정부가 협상 시한 내 실질적 타결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 IRA·CHIPS법 이후 심화된 무역 규제의 그림자
한·미 관세 협상의 긴장감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이후 본격화되었다. 이들 법안은 미국 내 생산 및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외 제조업체에는 배타적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사실상의 차별 정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관련 조항은 한국 자동차 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북미에서 조립되지 않으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제조사의 수출 전략에 큰 타격을 주었다.
또한 반도체 관련 지원금 수령 조건으로 ‘중국 투자 제한’, ‘장비 반출 제약’ 등이 포함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공급망 재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은 미중 간 기술 분쟁의 사이에서 정책적 양면 압력을 받고 있으며, 미국 투자에 대한 실질적인 이득보다 규제 부담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무역 분쟁 조정 요청을 다자 무대인 WTO, OECD 등에서도 병행 추진 중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관세협상은 단순한 양자 무역 협정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위치, 산업 주도권 경쟁,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 다층적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라 공급망 안보를 이유로 보호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있고, 한국은 개방성과 상호 호혜라는 FTA 원칙을 되새기며 정책 조율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의 입장이 계속 엇갈리며, 관세 문제는 외교·경제·산업 정책 전반에 걸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변수로 작용 중이다.
2. 전략 품목 중심의 갈등과 산업계 영향
이번 협상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장비, 철강·알루미늄 등 이른바 ‘전략 품목’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은 이러한 품목들을 자국 내 생산 기반으로 옮기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관세 장벽과 보조금 제한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국 산업계는 이러한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고, 세계적 공급망 불안정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전기차 산업의 경우, 미국은 ‘북미산’ 인증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산 완성차와 부품에 대한 실질적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조지아주, 앨라배마주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립일자 기준’ 등의 규정 때문에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되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실제 투자 효과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일각에서는 멕시코, 캐나다 등 제3국 생산으로 전환을 검토 중이다.
철강·알루미늄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미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232조 관세 부과 등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 감소뿐 아니라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는 미국의 수출 통제 기준이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제3국에서 장비 조달과 테스트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이처럼 전략 품목 중심의 관세 정책은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공급망 재조정 비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전략적 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산업계는 이번 협상 결과가 향후 5년 이상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정치·외교·산업부문이 긴밀히 연계된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 협상 시한 임박과 외교적 해법 모색
2025년 8월로 설정된 이번 관세협상의 시한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양국 정부는 막판 조율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협상 전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측 USTR(무역대표부)와의 직접 협의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주요 갈등 품목별로 협상 분과를 나누고, 실무적 조율을 통해 관세율 완화 및 적용 유예기간 확보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미국 측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반발과 제조업 기반 강화를 원하는 유권자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투자 우호국 지위’, ‘안보 동맹 파트너십’, ‘공급망 안정 기여도’ 등을 전방위 외교 전략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다자 협의체 내 공동 대응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기존 FTA의 재해석을 통한 예외조항 확대, 혹은 품목별 단계적 이행 방식이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등 미국과 유사한 갈등을 겪는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 및 공동 협상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특히 한국의 대미 투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수준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의 실리 계산이 변화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단기적인 관세율 조정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한·미 간 무역 구조와 산업 협력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외교적 유연성과 산업적 전략성을 동시에 요구받는 복합 과제인 만큼, 정부의 정교한 전략 수립과 실시간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상 갈등이 경제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국익 중심의 냉철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